관심을 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직장없는 노동자는 바로옆에 있다
글쓴이 : 임성형 한국노동공제회 권익사업팀장
회계학도였던 시절, 필자는 기업재무제표 분석에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겠단 희망으로 주식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졸업 이후 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취업실패였다. 흔히 말하는 인서울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증권회사에 취직할 엄두도 못냈고, 투자자문회사는 기본급이 없는 계약을 제시하며 일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약 7년된 취업실패 이야기는 현재 돌이켜보면 필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는 기본급이 없는 계약서에 서명했다면 필자 또한 프리랜서로서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이하 “한국노동공제회”)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에 담은 필자의 이야기는 노동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며, 누구든 겪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플랫폼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의 규모가 정의와 조사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약 700만명에 육박한 것은 대한민국 전체 경제활동인구를 생각해본다면, 경제활동인구 4명중 1명이 한국노동공제회가 지칭한 직장없는 노동자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700만명의 직장없는 노동자는 어디에 있을까?
직장없는 노동자의 수는 디지털 경제 발전에 따라 생겨난 디지털라벨링, 컨텐츠 모더레이터, 1인 크리에이터 등 새로운 업종의 증가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달은 신규 업종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AI와 로봇을 이용하여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전체적인 고용의 양을 감소시키는 것에 일조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23만명의 배달노동자, 16만명의 대리운전노동자, 11만4천명의 가사노동자가 플랫폼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로 고려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 노동의 형태가 바뀌어 직장없는 노동자로 간주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으며, 700만명이란 수치는 사용자가 법제도에 규정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를 플랫폼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라는 허울에 가려 놓은것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우리주변에 존재했던 “직장없는 노동자” 헤어디자이너의 현실
우리가 흔히 자영업자 또는 고용된 노동자로 알고 있는 헤어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숍 또는 원장이 아닐 경우 대부분의 헤어디자이너는 노동자와 프리랜서 사이 특정할 수 없는 지점에 분산되어 있다. 그 이유는 계약의 형태가 사업주 또는 기업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용실은 운영형태에 따라 공유미용실과 일반미용실로 구분된다. 공유미용실에 속한 헤어디자이너는 1인 자영업자이며, 임대업자와 부동산 임대계약과 유사한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시설 사용료와 수수료 정도 지급한다. 여기에 속하는 헤어디자이너는 홍보 및 영업방식, 경영 등을 총괄하고 사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진다.
(출처 :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일반미용실은 원장이라 칭하는 사업주가 있다. 원장은 공간, 영업력, 기술 등을 제공하는 주체이며, 소속 헤어디자이너는 제공되는 자원을 활용하여 고객을 유치하고 미용실의 매출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업의 자원을 사용하여 이윤창출을 하는 것에 기여하는 일반노동자와 다를게 없어 보이지만, 헤어디자이너는 원장과 체결하는 계약으로 인해 일반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대표적인 이유는 계약서상에 기재된 “사업주가 자원을 제공하고 헤어디자이너가 달성하는 수익의 일부는 분배한다”는 조항때문이다. 원장은 헤어디자이너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종속관계가 아니라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헤어디자이너는 급여만 받지 않을 뿐 대부분의 활동을 지휘통제받고 있다.
다양한 통제 수단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수단은 가격결정권이다. 일반 미용실은 경력에 따라 일반회사와 마찬가지로 직급이 정해져 있다. 직급은 경력과 미용실 매출기여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원장의 권한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가격결정권을 언급하고 직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직급별로 컷트를 제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가격이 정해져 있고, 이 가격설정은 원장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가격결정권이 없는 헤어디자이너는 원장에게 을(乙)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다른 통제수단은 고객을 받는 헤어디자이너의 “순번”이다. 순번은 다수의 헤어디자이너가 있는 미용실에 예약을 하지 않은 고객이 왔을 때 누가 이 고객을 응대할 것인지에 순서를 의미한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경우 순번이 지정되어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미용실에서는 대부분 원장에 의해 순번이 정해진다. 합리적인 기준을 통해 순번을 정하는 원장도 있는 반면, 별도의 기준없이 본인을 잘 따르는 헤어디자이너를 우선순위로 배정하거나, 심지어 원장 본인을 우선순위로 두는 경우도 존재한다. 순번은 수익과 연관되기 때문에 모든 헤어디자이너에게 민감하지만, 특히 이직 또는 신입으로 미용실에서 일하게 된 헤어디자이너에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업력이 부족한 시기에 수익을 얻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원장은 신입길들이기 또는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시점
상기 필자가 이야기한 헤어디자이너의 현실만 보면 악덕 원장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원장은 소속된 헤어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신입시절을 겪었으며, 다양한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이기도 하다. 이는 정착지원금이라는 수당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정착지원금은 초기 영업력이 부족하여 수익이 없는 헤어디자이너가 고객에게 기술을 인정받고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에 도달할 때까지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짧게는 1개월 많으면 6개월 이상 지급되는 수당이다. 돈이 최고라 생각되는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누군가의 시작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처럼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인간성이 자본에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큰 원동력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관심을 주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직장없는 노동자는 바로옆에 있다
글쓴이 : 임성형 한국노동공제회 권익사업팀장
회계학도였던 시절, 필자는 기업재무제표 분석에 매력을 느낌과 동시에 새벽 3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던 현실을 벗어날 수 있겠단 희망으로 주식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고 결심했다. 졸업 이후 이를 위해 서울로 상경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결과는 취업실패였다. 흔히 말하는 인서울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 증권회사에 취직할 엄두도 못냈고, 투자자문회사는 기본급이 없는 계약을 제시하며 일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약 7년된 취업실패 이야기는 현재 돌이켜보면 필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이다. 그 이유는 기본급이 없는 계약서에 서명했다면 필자 또한 프리랜서로서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이하 “한국노동공제회”)의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서론에 담은 필자의 이야기는 노동의 형태가 다양화되고 있는 것이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니며, 누구든 겪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플랫폼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의 규모가 정의와 조사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약 700만명에 육박한 것은 대한민국 전체 경제활동인구를 생각해본다면, 경제활동인구 4명중 1명이 한국노동공제회가 지칭한 직장없는 노동자로서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700만명의 직장없는 노동자는 어디에 있을까?
직장없는 노동자의 수는 디지털 경제 발전에 따라 생겨난 디지털라벨링, 컨텐츠 모더레이터, 1인 크리에이터 등 새로운 업종의 증가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기술의 발달은 신규 업종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AI와 로봇을 이용하여 인간의 노동을 대체함으로써 전체적인 고용의 양을 감소시키는 것에 일조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23만명의 배달노동자, 16만명의 대리운전노동자, 11만4천명의 가사노동자가 플랫폼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로 고려되는 것을 생각해보면 기존 노동의 형태가 바뀌어 직장없는 노동자로 간주되었다고 유추해 볼 수 있으며, 700만명이란 수치는 사용자가 법제도에 규정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노동자를 플랫폼노동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라는 허울에 가려 놓은것에 상당부분 기인한다.
우리주변에 존재했던 “직장없는 노동자” 헤어디자이너의 현실
우리가 흔히 자영업자 또는 고용된 노동자로 알고 있는 헤어디자이너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숍 또는 원장이 아닐 경우 대부분의 헤어디자이너는 노동자와 프리랜서 사이 특정할 수 없는 지점에 분산되어 있다. 그 이유는 계약의 형태가 사업주 또는 기업에 따라 다양하기 때문이다. 미용실은 운영형태에 따라 공유미용실과 일반미용실로 구분된다. 공유미용실에 속한 헤어디자이너는 1인 자영업자이며, 임대업자와 부동산 임대계약과 유사한 내용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공동시설 사용료와 수수료 정도 지급한다. 여기에 속하는 헤어디자이너는 홍보 및 영업방식, 경영 등을 총괄하고 사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진다.
(출처 : 픽사베이 무료이미지)
일반미용실은 원장이라 칭하는 사업주가 있다. 원장은 공간, 영업력, 기술 등을 제공하는 주체이며, 소속 헤어디자이너는 제공되는 자원을 활용하여 고객을 유치하고 미용실의 매출을 증가시키는 역할을 한다. 기업의 자원을 사용하여 이윤창출을 하는 것에 기여하는 일반노동자와 다를게 없어 보이지만, 헤어디자이너는 원장과 체결하는 계약으로 인해 일반노동자로서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대표적인 이유는 계약서상에 기재된 “사업주가 자원을 제공하고 헤어디자이너가 달성하는 수익의 일부는 분배한다”는 조항때문이다. 원장은 헤어디자이너에게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종속관계가 아니라 주장한다. 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헤어디자이너는 급여만 받지 않을 뿐 대부분의 활동을 지휘통제받고 있다.
다양한 통제 수단이 있지만 대표적으로 눈에 띄는 수단은 가격결정권이다. 일반 미용실은 경력에 따라 일반회사와 마찬가지로 직급이 정해져 있다. 직급은 경력과 미용실 매출기여도에 따라 결정되기도 하지만 원장의 권한에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다. 가격결정권을 언급하고 직급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직급별로 컷트를 제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최대 가격이 정해져 있고, 이 가격설정은 원장의 권한이기 때문이다. 가격은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가격결정권이 없는 헤어디자이너는 원장에게 을(乙)이 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또 다른 통제수단은 고객을 받는 헤어디자이너의 “순번”이다. 순번은 다수의 헤어디자이너가 있는 미용실에 예약을 하지 않은 고객이 왔을 때 누가 이 고객을 응대할 것인지에 순서를 의미한다. 대규모 프랜차이즈 미용실의 경우 순번이 지정되어 합리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프랜차이즈를 제외한 미용실에서는 대부분 원장에 의해 순번이 정해진다. 합리적인 기준을 통해 순번을 정하는 원장도 있는 반면, 별도의 기준없이 본인을 잘 따르는 헤어디자이너를 우선순위로 배정하거나, 심지어 원장 본인을 우선순위로 두는 경우도 존재한다. 순번은 수익과 연관되기 때문에 모든 헤어디자이너에게 민감하지만, 특히 이직 또는 신입으로 미용실에서 일하게 된 헤어디자이너에겐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영업력이 부족한 시기에 수익을 얻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원장은 신입길들이기 또는 권위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공감과 이해가 필요한 시점
상기 필자가 이야기한 헤어디자이너의 현실만 보면 악덕 원장만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원장은 소속된 헤어디자이너와 마찬가지로 신입시절을 겪었으며, 다양한 고충을 이해할 수 있는 동료이기도 하다. 이는 정착지원금이라는 수당으로 여실히 드러난다. 정착지원금은 초기 영업력이 부족하여 수익이 없는 헤어디자이너가 고객에게 기술을 인정받고 수익이 발생하는 시점에 도달할 때까지 기본적인 생계를 유지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짧게는 1개월 많으면 6개월 이상 지급되는 수당이다. 돈이 최고라 생각되는 현실 속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싶은 누군가의 시작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처럼 서로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인간성이 자본에 침식되지 않고 남아 있다면,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큰 원동력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